제3장
그의 시선이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노골적으로 훑었다.
서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설마 그가 정말로 이곳에서 일을 치를까 싶었다.
그녀는 옷자락을 붙잡고 위로 걷어 올렸다.
가늘고 하얀 허리가 드러났고, 검은색 스웨터 속 하얀 속옷의 가장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갑자기, 남자가 그녀를 몸에서 밀쳐내며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연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선 그녀는 속으로 차오르는 기쁨을 억누르며, 겉으로는 무고하고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태하는 가식적으로 구는 여자를 곁눈질했다. 돈 때문에 저렇게까지 몸을 던지다니.
지금은 돈을 탐하지만, 자기가 죽고 나면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나?
자신은 상관없지만,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가!”
윤태하는 이런 위선적인 여자가 혐오스러웠다.
서연은 사면이라도 받은 듯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여보…….”
윤태하는 짜증이 치밀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웨터를 내리고 겉옷을 챙겨 나갔다.
클럽을 나서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춥지 않았다.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과정은 짜릿하고 위험했지만,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다음 날, 서연은 유진에게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약속을 잡았다.
“너 진짜 간도 크다.” 유진은 서연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연이 유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부귀는 위험을 무릅써야 얻는 법이지.”
유진은 그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진짜 덮치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 얼굴, 그 몸매, 그 집안이면 충분히 호감이 갈 만하지.”
“응?”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그 사람 아이를 낳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서연이 덧붙였다.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예쁠걸.”
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
서연이 히죽 웃자, 유진은 선 넘지 말라고 당부했다. 상대방이 다시 이혼 얘기를 꺼내면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결혼 생활 중에 폭행당하는 건 가정 폭력이고, 가정 폭력은 부부간의 갈등으로 취급되어 가해자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알았어.” 서연은 유진이 자신을 걱정하는 걸 알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식사를 마치자 유진은 한결 차분해졌다.
두 사람은 백화점에서 웃고 떠들며 쇼핑을 하다가, 갑자기 서연이 걸음을 멈췄다.
유진도 미간을 찌푸렸다. “쓰레기 자식!”
서연은 하서준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감정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었다.
“가자.” 서연이 유진을 끌고 다른 쪽으로 향했다.
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뭘 무서워해? 내가 아직 저놈 손봐주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서연의 손을 뿌리치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섰다.
서연이 그녀를 붙잡았다.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운 거랑 엮이기 싫어서 그래.”
그 말을 들은 유진이 침을 뱉었다. “맞아, 역겨운 놈.”
그들이 몸을 돌려 막 가려던 참이었다.
“서연아.” 하서준이 쫓아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유진은 서연을 보호하듯 막아서며 하서준과 맞설 준비를 했다.
서연은 유진을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고는 하서준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무슨 짓이야?”
“네가 날 이렇게 뒤흔들어 놓고, 내가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그는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그녀를 제대로 손봐주지 않으면 이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말을 마친 하서준이 서연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서연이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그는 허탕을 쳤다.
화가 난 하서준이 더욱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 들었다.
서연은 그대로 손을 휘둘러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소리가 맑고 요란하게 울려 퍼져 손바닥이 얼얼했다.
하서준은 고개가 돌아간 채 경악하며 서연을 노려보았다. “서연, 네가 감히 날 쳐!”
“손에 칼이 없는 걸 다행으로 알아.” 서연의 눈에 혐오가 가득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나한테찝쩍대면, 네 집까지 쳐들어갈 줄 알아.”
서연은 원래 강한 상대일수록 더 강하게 나가는 성격이었다. 누가 그녀를 건드리면 목숨 걸고 덤벼들 수 있었다.
하서준은 서연과 연애하면서 몇 번 만나지도 못했다. 대부분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다.
언제나 다정하고 살갑던 서연이었기에, 하서준은 그저 그녀를 얼굴만 요염한 고분고분한 여자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성깔이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 길들여야겠군.’
구경꾼들이 점점 몰려들자 유진이 서연을 끌고 자리를 떴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 쪽이 더 손가락질받기 마련이었다.
하서준은 맞은 뺨을 문지르며 서연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윤태하는 방금 전의 광경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서연이 그 남자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까지도.
최 비서는 서연이 저렇게 겁이 없는 사람일 줄은 몰라 의외였다.
“저 남자는 하서준이라는 자로, 유명한 난봉꾼입니다. 며칠 전, 그들 사이에서 하서준에 대한 동영상이 퍼졌습니다. 지금 보니, 영상을 찍고 유포한 사람이 서 사모님이신 것 같습니다.”
영상은 이미 하서준이 사람을 시켜 삭제했지만, 최 비서는 기어코 찾아내 윤태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윤태하는 영상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최 비서는 입술을 오므리며 핸드폰을 챙겼다. “이 하서준이라는 자는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사모님께 이렇게 망신을 당했으니, 보복하려 들 겁니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기 전에 그 결과를 감당할 계산부터 해야 하는 법이지.” 윤태하가 몸을 돌렸다. “보복을 당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야.”
최 비서는 할 말을 잃었다. ‘…….’
지금 서연이 윤태하 씨의 법적 아내라는 걸 상기시켜 드려야 하나?
최 비서가 윤태하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럼 이혼은 예정대로 하실 겁니까?”
윤태하는 서연의 그 가식적인 얼굴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해야지.”
.
서연은 유진의 집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머물렀다. 유진은 하서준을 한바탕 더 욕하면서도, 서연이 보복당할까 봐 걱정했다.
서연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면, 네 남편한테 도움을 청해 봐. 어쨌든 너도 그 사람 아내인데, 하서준 좀 처리해달라고 해.”
서연은 윤태하를 떠올리자 속으로 움찔했다.
그 남자는, 아주 사악했다.
“내가 진짜 그 사람을 남편으로 생각하는 줄 알아?”
“그럼 어떡해? 차라리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자.”
“나한테 함부로 못 해.”
서연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나서야 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보내주었다.
집은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재혼하기 전 사주신 투룸이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막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영상을 보고 있는데, 화면에 숫자 배열이 떠올랐다.
모르는 번호였다. 서연은 한참을 기다리다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내일 오전 여덟 시, 구청에서 이혼 서류 접수해.”
서연은 그 목소리를 듣고 화면의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였다.
하지만 이내 그 정도의 재력가에게 자기 번호 알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집요한 사람이었다.
서연은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입꼬리를 올렸다. 목소리는 다정하고 애교스럽게 바꿨다. “저는 평생 함께할 생각으로 결혼한 거예요. 한번 결혼했으면, 이혼은 안 해요.”
“이혼 안 하고, 사별이라도 기다리게?”
“…….”
그 말은 서연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당사자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요즘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무슨 병이든 다 고칠 수 있어요. 당신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협조하고, 긍정적인 마음만 가지면 분명 나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라도 이런 말을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윤태하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조금의 진심도 담기지 않았을 여자의 표정을 상상했다.
“꼴사나운 꼴 보이기 싫으면, 알아서 처신하는 게 좋을 거야.” 윤태하가 여자에게 경고했다.
서연은 그가 이 결혼을 받아들이기 싫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 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의 진심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건 못 들어주겠네요. 정 그러시다면, 당신 부모님께 말씀드리세요. 두 분이 동의하시면, 저도 따를게요.”
결혼에 충동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누구와 결혼하든 결과는 비슷할 터였다.
그와의 결혼은, 오히려 더 단순했다.
윤태하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제법 영리한 여자였다.
그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무척이나 기뻐하는데, 동의할 리가 없었다.
윤태하는 여자의 속내가 더욱 혐오스러워졌다.
“나랑 맞서는 게,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그의 불쾌함이 묻어 나왔다. 서연은 속으로 그가 조금 두려웠다.
“시간도 늦었고, 몸도 안 좋으시니 일찍 쉬세요. 생각이 정리되시거나 부모님을 설득하시면, 그때 다시 연락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서연은 그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번호를 보며, 그녀는 이름을 저장했다.
「윤태하」
핸드폰을 내려놓자, 머릿속에 윤태하의 창백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겠지.
어쨌든, 최대한 그를 피하고 덜 마주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윤 사모님은 사람을 보내 서연을 본가로 데려오게 했다.
